할렐루야!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2023년 새해 벽두에 전국주일학교연합회 제68회기가 코로나 가운데서도 절치부심(切齒腐心) 기도하며 전국대회를 실시한 것은 3년 동안 온라인 비대면으로 대회를 하였기에 올해는 기필코 코로나를 넘어 부르심에 합당한 전국주교와 임원 및 교사 그리고 학생과 어린이가 되기 위한 몸부림과 40일간 임원들과 분과장들이 하루 한 끼 금식하며 이루어낸 성과이기도 합니다.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사랑의교회 담임 오정현 목사님의 다음세대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자부심으로 장소와 편의를 제공하시고 선물까지 조건 없이
소명받고 전도사로 교회 섬김 … 고아를 위한 부르심 사회사업가, 아동문학가, 증경 부총회장, 명예문학박사1952년 고 윤인식 장로(공화당 4선 국회의원, 국가 조찬기도회 창립자)가 설립한 함평 삼애원은 그 역사와 발자취가 한국교회의 귀한 흔적으로 남아 있다. 삼애원은 전쟁고아와 결손 가정의 새싹들의 보금자리로 지금까지 약 5,000여 명의 인재들을 사회로 배출했다. 함평에 도착하여 ‘사회복지 법인 함평 삼애원(원장 윤강남 함평 중앙교회 권사)’을 방문했다. 수많은 인재를 양성한 곳이라기에 너무 초라한 모습이다. 낡은 건물들이다. 궁
전북 순창군청의 인근에는 조선 영조 35년(1759년)에 건립된 ‘순창 객사’는 1905년 체결된 을사늑약의 무효를 주장하며 1906년 6월 4일 정읍 태인서원에서 이들은 호남 최초의 의병 투쟁을 결의하고 순창으로 집결하여 약 팔백여 의병을 모았던 곳이다. 의병장 최익현은 대마도로 끌려가 고문 끝에 죽음을 맞이하고, 백제의 비구니가 세웠다는 ‘이즈하라의 수선사’라는 사찰에 그의 순국비가 있다. 당시 일본은 “조선군 10만은 두렵지 않으나 최익현 한 사람은 두렵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라가 위기를 당할 때 일어나 항전하였던 결의가
눈 앞에서 친구의 죽음을 지켜본 대학생7공수여단 광주 투입 직전, 본부로 교육 명령연속적인 기적행전은 새벽기도의 영성 ▲ 신앙생활의 출발저희 가정은 할머니부터 신앙생활을 하셔서 아버님은 장로님이시고요, 어머님은 권사님입니다. 그래서 저는 자연스럽게 모태신앙이고 유아세례교인입니다. 그래서 아주 평범한 신앙생활을 하면서 성장했습니다. 안동에서 태어나 영주로 이사해서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태어난지 3년 만에 호적에 올랐지요. 그래서 56년에 태어나 58년생으로 호적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제 이름도 당시 전
‘전남 순천시 서면 청소길 61’ 작지만 아름다운 ‘순천지본교회’가 있다. 개혁측에 있던 교회였다. 1대 장로로 임직하여 노회장로회연합회를 설립하고 초대회장부터 섬겼고, 전국부회장을 했던, 임후식 장로를 만났다. 얼굴에 가득한 웃음이 포근함을 전해주었다. 어머니(사라)의 신앙이 뿌리가 되었고, 그 신앙은 3대를 이어가고 있다. 함께 자리하였던 김광자 권사는 조용하면서도 할말은 정확히 하는 위트가 넘치는 권사였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복을 주신 이야기를 듣고 은혜가 되었다. 순천지본교회(하정오 목사)의 초대 장로로 임직받아서 한 평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총회와 모든 속회, 기관, 그리고 전국 교회와 기독청장년면려회 회원 여러분 위에 함께하시기를 기도합니다.지금 우리의 형편은 코로나 19 펜데믹으로 인하여 교회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초유의 상황을 겪고 있으며 그 영향으로 총회와 교회의 모든 사역이 어려운 상황 속에 처하여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더욱 귀하게 쓰임 받기를 소망하며 저희 CE는 어떠한 환경에서도 주님만 바라보고 말씀 붙들고 기도하며 이 난관을 극복하면서 면려운동의 사명을 감당해 오고 있으며 앞으로도 감당해 나
▲ 동산교회와 장로님의 관계제가 어린 시절 일제가 교회를 핍박하던 상징적인 것인 신사당(神社堂)이었지요. 그곳이 교회가 된 것은 기적 가운데 기적이고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입니다.10리 정도 떨어진 팔복동의 유상교회에 다니던 동산지역의 성도들의 기도로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선물이며 기도의 응답인데 이것이 우리 동산교회의 출발이 되었고요. 당시 저는 10세였지요. 그래서 저에게 동산교회는 저의 가정이며, 영혼의 안식처이며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정말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저는 교회와 하나가 되는 삶을 살아온 것 같습니다.▲
이양호 원로장로는 최근 급격한 건강의 악화로 심신이 많이 약해져 있는 상태이다. 직접 대화나 인터뷰가 힘든 상태이다. 따님이신 ‘이은숙 권사’가 자택에서 돌보고 있다. 앉고 일어서는 것을 혼자의 힘으로 할 수 있어도 24시간 지켜보아야 하는 실정이다. 인터뷰 당일도 병원에서 약을 받아오느라 힘이 들었지만, 믿음과 은혜로 아버지를 돌보는 따님의 모습에 머리가 숙여진다. 경기노회 성덕중앙교회를 섬기는 이병선 장로(아들)는 아버지의 사진을 잘 보관하고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 편집자 주. 장로 장립은 언제?제가 1930년
영화 의 중심인물인 독립운동가 김원봉(사진)과 그가 주도적 역할을 한 민족혁명당 활동이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약산(若山), 김원봉(金元鳳)을 검색하면 그의 국적이 '북한'으로 나온다.그는 1898년 경남 밀양(密陽)에서 출생하였다. 1918년 난징[南京]의 진링[金陵]대학에 입학하였고, 1919년 12월 의
독립운동단체인 대동단 일원으로 활동하다 중국에서 순국한 고 김용환 선생 (1892~1919)의 유해가 지난 2003년 12월 31일 조국의 품에 안겼다. 현재는 대전국립묘지 현충관에 안치되어 있다. 김용환선생은 퇴계 이황의 제자로 영남학파의 거두였던 '학봉 김성일'의 13대 종손이며 명문가의 자세이다. 그는 조
6월은 나라를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의 공헌을 마음 속에 깊이 새기는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그렇기에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의 6•25전쟁 호국영웅은 더 특별할 수 밖에 없다. 2016년 국가보훈처가 6월의 6•25전쟁 호국영웅으로 선정한 분은 맨손으로 폭탄을 투하하며 조국을 지켜낸 창공의 신
▲ 김주열 기념관에 있는 초상화315 마산의거로 말미암아 희생된 김주열 마산상업고등학교 1학년.3.15 마산의거가 있은 지 27일이 지난 4월 11일 낮, 그간 행방을 찾지 못했던 17세의 어린 학생 김주열(金朱烈)의 시체가 마산 중앙동 해안에 떠오르면서 정국이 파국으로 치달았다. 전남 남원이 고향인 김주열
▲ 박준채1929년 11월 1일, 광주를 떠난 통학 열차가 나주역에 도착했다. 열차에서 내린 일본인 남학생이 광주여고보에 재학 중이었던 박기옥과 이광춘을 희롱하자 박기옥의 사촌동생인 박준채(朴準埰)가 항의하면서 조선과 일본 학생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당시 현장에 있던 학생 간의 패싸움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