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와 일본 극우 정치의 관계 살펴야, 아베 가문의 가짜뉴스도 많아

아베 신조 전 총리가 통일교 행사에서 축사하는 영상
아베 신조 전 총리가 통일교 행사에서 축사하는 영상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8일 유세 도중 총에 맞아 숨진 가운데 총격범인 야마가미 데쓰야(41)가 경찰 조사에서 “내 어머니는 통일교회 신자로, 아베 신조가 통일교회와 친한 것을 알고 노렸다”며 “원래는 통일교회의 리더를 노리려 했지만 어려울 것 같아 아베 전 총리가 통일교회와 관계가 있다고 여겨 노렸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통일교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또한 통일교와 일본 우익 정치집단에 관한 이야기와 아베 가문의 조선총독부 마지막 총리의 후손이라는 점도 부각되고 있다. 

야마가미의 모친은 남편 사망 뒤 이어받은 건축회사를 운영하다 20년 전 파산했는데, 이를 두고 야미가미는 통일교 신자인 모친이 통일교에 거액을 기부했기 때문이라며 원망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통일교는 11일 성명을 내어  “용의자의 모친은 월 1회 가정연합의교회 행사에 참석해왔다”고 밝혔다. 일본 언론 보도를 보면, 야마가미가 “정치 신조에 대한 원한 때문이 아니라 아베가 (통일교 단체에) 보낸 영상 메시지를 보고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아베 전 총리는 통일교 단체인 천주평화연합과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 지난해 9월 인천 송도센트럴파크호텔에서 공동주최한 ‘신통일한국 안착을 위한 싱크탱크 2022’ 출범식에 이은 희망전진대회에서 영상을 통해 기조연설을 했다. 아베 전 총리는 이 연설에서 “전체주의 패권주의 국가가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을 강행하고자 하는 책동을 저지해야 할 것”이라며 “일본, 미국, 대만, 한국 등 자유와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들의 결속이 더욱 더 요청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 행사에선 아베 전 총리뿐 아니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훈센 캄보디아 총리, 호세 마누 바호주 전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등도 이런 식으로 참여했다.

이에 대해 통일교는 성명을 통해 “일본의 정상급 지도자인 아베 전 총리가 본 연합에 영상 연설을 보냈다는 이유에서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는 용의자의 주장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가정 내에 이해하기 어려운 성장 과정을 거쳐 발생한 극단적인 사건이기에 절차에 따라 사법기관에 의해서 용의자의 범행 동기가 명확히 조사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했다.

통일교의 문선명(1920~2012) 교주는 1968년 4월 일본국제승공연합을 창설한 이후 일본 우익 정치인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주간지 <주간현대>는 1999년 2월 ‘현직 일본 국회의원 128명의 승공연합, 통일교회 관계도 목록’을 폭로한 데 이어, 2006년 6월 ‘아베 신조와 통일교는 외조부 대부터 면면히 이어지는 관계’라고 비판하는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는 보도도 있다. 

통일교에서도 비슷한 주장을 펼쳐왔다. 통일교 기관지 <사상신문>은 1986년 7월20일 기사에서 “중의원·참의원을 뽑는 선거에서 130명의 승공 추진 의원이 당선됐다”고 주장했다. 문선명 교주가 직접 일본 정계와의 관계를 언급한 문서(<문선명 어록>)도 있다고 전해진다. 

일본에서 통일교의 실체를 폭로한 야마구치 변호사는  2017년 한국 <CBS>와 한 인터뷰에서 통일교의 자민당 내 정치세력화를 도운 핵심 인물로 아베 신조 총리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 전 수상'과 A급 전범 용의자였던 사사가와 료이치 전 중의원을 지목했다. 야마구치 변호사는 “통일교의 정치세력화는 아베 신조 총리의 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 전 수상 때부터 시작해 사사가와 료이치가 다리 역할을 했다”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아베 전 총리가 통일교 행사에 영상을 보낸 것은 통일교가 오래 전부터 일본 우익 정치세력과 맺어온 관계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아베 전 총리의 외조부이자 자민당 내 극우파였던 기시 노부스케 전 수상이 1970년 4월 일본의 통일교회를 방문한 것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후 기시 전 수상은 1970년대 자민당의 스파이방지법 제정 등 반공입법 과정에서 재정 후원과 여론 형성을 위해 일본국제승공연합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전 총리의 가계에 관한 사실 이해 필요

여기서 아베 전 총리의 가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전총리가 당시 조선의 마지막 총독이었던 '아베 노부유키(阿部信行)'의 손자라는 이야기는 지어낸 말이다. 아베 신조와 아베 노부유키는 전혀 관련이 없는 '남남'이다. '阿部' 성의 아베 노부유키와 '安倍' 성의 아베 신조는 성부터 다르다. 두 사람의 성을 일본어로 읽으면 발음이 같을 뿐이다.

고인이 된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야마구치(山口)현의 중의원을 지낸 아베 칸(安倍 寛, 1895~1946)의 손자다. 그의 아버지는 1982년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가 수상으로 취임하면서부터 4년 동안 외무상을 지낸 아베 신타로(安倍晉太郞)다. 

아베 칸의 아들로 태어난 아베 신타로는 1948년 도쿄대학 법학부 정치학과를 졸업하면서 <마이니치신문>(每日新聞)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3년 후인 1951년, 그는 기시 노부스케의 딸 기시 요코(岸洋子)와 결혼해 3년 뒤 아베 신조를 낳았다.

그 뒤 아베 신타로는 8년간의 기자 생활을 접고 외무성에 들어가 비서관이 됐다가 1년 뒤인 1957년부터 총리실 비서가 됐다. 그는 당시 총리가 된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Kishi Nobusuke, 1896~1987)를 보좌하면서 총리의 사위가 됐다. 1958년 처음으로 중의원 선거에 출마한 아베 신타로가 무난히 당선된 것은 현직 수상이었던 장인의 후광을 업었기 때문이었다. 

아베 전 총리의 외조부가 바로 A급 전범의 용의자로 구속돼 극동국제군사재판의 수사를 받고 재판이 끝난 뒤에 불기소로 석방됐다가 나중에 사면돼 총리직을 역임한 기시 노부스케다. 기시 노부스케는 1957년부터 1960년까지 일본의 제56, 제57대 총리를 역임하면서 소위 '55년 체제'라 불리는 자민당의 장기집권 구도를 만든 우파 세력의 거물 정치인이다.

기시 노부스케는 야마구치현의 '長州 藩士' 가문의 후손 기시 히데스케(岸秀助)의 차남이었다. 노부스케 위로 장남 이치로(市郞)가 있었고, 아래에 3남인 동생 에이사쿠(榮作)가 있었다. 나중에 총리를 지낸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1901~1975)가 바로 기시 노부스케의 친동생이었다.

최근에 떠 돌아 다니는 아베 전 총리의 가계에 관한 소문들은 이미 지난 2019년에 '아베를 둘러싼 가짜 뉴스'로 판명된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앞서 원정시위를 한 엄마부대 주옥순 대표는 독일인들에게 "집에 가, 더 배워"라는 망신을 당했으며, 일본의 여성단체도 "너무 끔찍하고 치욕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앞서 원정시위를 한 엄마부대 주옥순 대표는 독일인들에게 "집에 가, 더 배워"라는 망신을 당했으며, 일본의 여성단체도 "너무 끔찍하고 치욕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를 바로 잡는 일은 한국사회의 끊임없는 역사 바로 알리기, 올바른 역사교육에서만이 가능하다.  일부 몰지각한 인물들의 소녀상 철거나 일장기를 내어거는 만행을 바라보면, 우리 사회의 방향성에 관한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고 있는 잘못된 극우세력이 독일까지 가서 소녀상을 반대한다는 만행을 저지르고,  위안부에 관한 망언을 하는 인물들이 실제로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의 영향'을 간접적으로 받은 것으로 봐야할 것이다.  

저작권자 © 기독교종합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